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괌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미군은 전사 3,000여 명, 부상 7,122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일본군은 18,327명이 전사하고 1,250명이 포로로 잡혔다. 사실상 수비대 전원의 전멸, 옥쇄로 태평양 전쟁 내내 보여준 섬 전투들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판 전투에 이은 괌 전투의 승리로 절대국방권의 붕괴는 명백해졌고, [[미국]]의 [[필리핀]] 진공 및 [[일본 본토 공습]]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괌]]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었고, 이후 니미츠 제독과 주요 참모들을 포함한 미 해군의 태평양전쟁 지휘부는 [[하와이]]에서 괌으로 이전하게 된다. 괌은 대일전의 기지로서 일본과 필리핀으로 향하는 모든 전력의 집결지가 되었으며 대규모 기지와 항구, 비행장이 들어섰다. 일단 일본 본토 공습 측면에서 괌은 [[사이판]]보다 남쪽으로 200km 거리에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 본토로부터 200km 더 멀리 있었다는 것으로 사이판에서 출격하는 것에 비해 B-29의 폭탄 탑재량이나 작전반경에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B-29의 사기적인 항속거리와 탑재량으로 이를 만회하기에 충분했고, 일본 본토 공습의 Main Base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배경 부분에서 상술했듯 미국의 잃어버린 실지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컸다. 일개 경비대 주둔지에 불과한 오르테 반도 해병대 막사의 국기게양식에 미 제5함대 사령관 스프루언스 제독이 직접 참가한 것이나,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직접 섬을 방문해 전투종료를 선언할 정도로 괌 전투의 정치적 위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해안에 상륙하면서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퍼포먼스만은 못했지만 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